숫자들,이유들,사실들

316,028,657,053

노동자들에게 청구되는 손해배상액

여러분은 이 숫자를 얼른 읽을 수 있습니까?

삼천백육십억 이천팔백육십오만 칠천오십삼

한참을 자릿수 헤아려서 겨우 알아차릴 수 있는 이 숫자는
손배가압류소송기록에서
원고인 기업 혹은 기관이
노동조합과 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손해를 배상하라고 청구한 청구금액의 총합입니다.
33.3손배가압류소송기록아카이브에는
소송기록이 확보된 단지 197건의 손배가압류사건만
다루고 있을 뿐인데도 그 청구금액의 크기는 거대합니다.
이 청구금액이 그대로 확정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 숫자는
한 사람의 노동자에게
커다란 위협이자 공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소송은 멈추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현장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520

노동자들이 피고로 지내는 시간

한 사람의 노동자가 손배가압류 소송을 당하고 나면
1심까지 도달하는 데 길게는 2,520일,
그러니까 84개월, 햇수로는 7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평균 26개월로 2년 이상을 기다리고만 있는 거지요.
손해배상사건에서 판결까지 도달하는 기간이 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창졸간에 피고가 되어 그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압박의 시간이 지속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선고 결과에도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소송기간이 길어질수로 선고금액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1,374,290,690원에 대해 2009.8.6.부터 2013.11.29.까지는 연5%,
다 갚지 못하는 경우 다음 날부터 연 20%를 배상하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사태 관련해 제기된 손해배상사건의 1심 판결문 주문입니다.
피고인 노동자에게 선고된 금액은 13억7천429만690원입니다.
이 숫자도 어마어마하지만, 실제 배상해야 하는 금액은 이보다 훨씬 큽니다.

1,374,290,690원(원금)+296,696,182원(1차이자 5%)=1,670,986,872원

우선, 1심에 도달하기까지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책정된
연 5%의 1차 이자인 2억 9천여만 원이 더해집니다.
16억이 훌쩍 넘는 이 금액을 노동자는 선고 당일에 내야 합니다.
선고받은 그날 내지 못하면 다음 날부터 연 20%의 2차 이자가 붙게 됩니다.
노동자가 내야 할 돈이 날마다 753,036원씩 늘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는 돈”

이 숫자는 기업이 손배소송에서 제시하는 막대한 청구금액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법원에서 판결한 ‘선고금액’ 앞에서 노동자들은
다시 한번 무릎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187

노동자 개인에게 화살을 날리는 소송 건수

헌법의 노동권행사는 단결권부터 시작합니다.
노동권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노동권 행사는 집단의 결정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노조가 노동자들의 뜻을 모아 함께 정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행사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그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은
어찌된 일인지 그 청구대상을 ‘개인’에 겨냥해서 진행합니다.
집단의 결정이었음에도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겁니다.

94.9%

33.3아카이브에 소장된 197건의 사건기록 가운데
94.9퍼센트인 187건이 모두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노동조합 단위로만 청구대상을 삼은 소송건은
단 10건에 그쳤지요.

14

숫자가 커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닙니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체가
기업인 경우는,
그 빈도가 높고, 흔해서
오히려 당연하게 보입니다.
‘기업은 그렇지’ 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니까요.
그런데 소송기록의 원고 항목에
‘대한민국’이라고 쓰여 있는 14건의 소송기록을 보면서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어떤 곳보다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해야 할 국가가,
국민의 팔 할이 노동자인 이 나라가
노동자, 곧 자국민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소송제기 주체(원고)

청구대상(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