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가 된 노동자들

문자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하세요”
“안전, 늘 안전을 신경 쓰세요”

일본기업이라 그런가,
노동자 안전도 신경 써주고, 국내기업이랑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생각은 얼마 안 가 뒤집어졌죠.
입사해서 제가 맡은 일은
유리분진을 삽으로 퍼다 지게차에 실어 나르는 일이에요.
유리분진은 몸에 닿으면 쓸릴 정도로 미세해서,
작업을 한 번 하고 나면 온몸이 유리가루에 뒤덮여 있어요.
회사는 유리분진을 마스크 한 장으로 견디라고 합니다.
제가 비정규직이기 때문입니다.
유리공장인 우리 회사는 유리에 베이는 일이 허다해요.
다쳤는데, 생명이 심각할 정도의 사고가 아니면
업체 사장이 와서 병원 보내주고 그걸로 제 안전은 끝.

회사가 말하는 원인 규명은,
저를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생산장비,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거였죠.
제 실수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책임은 오롯이 제 몫이 됩니다.

“우리도 노조 필요해요”
“알지, 우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잘릴 게 뻔한데, 되겠어?”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노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제 모습을
회사 관리자가 지켜본 다음 날,
타 회사 발령 공고문이 게시됐습니다.
사실상 해고였어요.

그럼에도 기어코 만들어진 비정규직 노조,
가입서를 낸 138명 모두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계약을 종료합니다”

이후 7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이기고,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는데도,
답이 없던 회사는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보냈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집회에 연대한 시민들이 함께 래커스프레이로 새긴 이 구호 때문입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불법파견 소송 중인 비정규직 노조의 집회시위를 두고 제기한 원청의 손해배상청구 사건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불법파견 소송 중인 비정규직 노조의 집회시위를 두고 제기한 원청의 손해배상

여성 기숙사를 침탈한 용역깡패

“Trrrrr, Trrrrr”

새벽 1시 30분, 전화기 소리에 잠에서 깼어요.
전화를 받았는데, 기숙사에 사는 동생이 전화를 했더라고요.

“언니, 너무 무섭다. 지금 여기 깡패 쳐들어오고 난리가 났다”

당황했죠. 새벽에 여성 기숙사에 깡패라니.
정신없이 뛰쳐나갔어요.
기숙사 앞에 갔더니, 동생말고도 동료들이 다 쫓겨나와 있었어요.

동생은 신발도 짝짝이로 신고 있었고,
다른 동료들도 최소한의 소지품도 없이
몸만 쫓겨나와 있는데,
말로만 듣던
용역깡패들이었어요.
신발 신고 여성 기숙사에 들어가서,
자고 있던 여성 노동자들을
끌어내기 시작하는데,
사감은 가만히 보고 있어요.
이게 말이 되나,
회사가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하나,
기가 막히는 거죠.
나중에 알게 됐는데,
‘각본’이 있더라고요.

‘인력구조조정로드맵’
모든 건 각본대로 흘러갔습니다.

그날 새벽, 겁에 질려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단 한 명도 출동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쫓겨나서 300일이 넘는 동안
투쟁을 했어요.
파업이 끝났을 때,
경찰차에 연행된 건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파업으로 우리는
156억 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받았습니다.

KEC지회의 타임오프제 적용과 단체협약 위반여부를 두고 벌어진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KEC지회 타임오프제 적용과 단체협약 위반여부를 두고 벌어진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청구

KEC지회의 2010년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KEC지회 2010년 파업에 대한 손배청구

저는 정리해고 대상자는 아니었어요

2,646명
회사가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두근두근.
명단에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산 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조금도 안심되지 않았습니다.
2,646명
너무 큰 숫자였으니까요.

회사가 경영을 잘못했는데
왜 노동자들이 다 책임져야 할까요.
‘죽은 자’가 되어버린 동료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어요.
제가 8월 그날, 공장 옥상에 있었던 이유입니다.

채증을 담당하던 저는,
경찰특공대가 대테러 장비로 무장하고
동료들을 군홧발로 짓밟는 모습을
고스란히 목격해야 했던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진술은 아무 힘이 없었어요.
진압된 동료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모두 구속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징계’해고됐다가
3년 만에 부당징계를 인정받아서 복직했습니다.
여전히 밖에는 해고노동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복직된 저는 1년간 임금이 압류되었습니다.
해고된 동료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어,
혼자 조용히 견뎌야 했습니다.

뒷산에 올랐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래서 사람들이 죽었구나’

10년이 지난 2018년,
2009년 그날에 대해 경찰은
‘국가폭력’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4년이 더 흐른 지금,
국가폭력의 피해자는 저는
여전히 2009년의 사건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피고’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지부의 2009년 정리해고사태 파업에 투입된 경찰의 인적피해를 사유로 제기된 손해배상청구 사건1

쌍용자동차지부 2009년 정리해고사태 파업에 투입된 경찰의 인적피해를 사유로 청구

쌍용자동차지부의 2009년 정리해고사태 파업에 투입된 경찰의 인적피해를 사유로 제기된 손해배상청구 사건2

쌍용자동차지부 2009년 정리해고사태 파업에 투입된 경찰의 물적피해를 사유로 청구

쌍용자동차지부의 2009년 정리해고사태 파업에 투입된 경찰의 인적피해를 사유로 제기된 손해배상청구 사건3

쌍용자동차지부 2009년 정리해고사태 파업에 투입된 경찰의 인적피해를 사유로 청구

안전사고, 제가 피고가 된 이유입니다

“장비가 떨어졌대요”
“다쳤습니까”
“사람이 피해서 인명사고는 피했습니다”

라인이 도는 현장에서 일을 하면
사고는 비일비재해요.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노동자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저는 현장 대의원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대공장에서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즉각 라인을 세워야 해요.
대의원과 회사 관리자가
사고가 왜 났는지 살펴보고,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모두 납득할 만한 원인을 규명해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를 하면,
그때 라인을 가동하는 것, 이게 원칙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사는 사고가 나도,
인명사고가 아니면
곧바로 라인을 가동하려고 해요.

그날도 그랬습니다.
우리 조합원이 다칠 뻔했는데,
스스로 피해서 사고를 피했어요.
너무 다행인 일이죠.
그런데 회사는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사고’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사고 난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동의도 없이 라인을 돌리려고 하더군요.

어느 순간부터
가동되는 라인은 목숨을 잃지 않는 한
중단돼선 안 되는 성역이 되었습니다.
라인을 따라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회사의 눈에는
1분에 1대씩 생산해야 하는
공장 시스템 속 부품일 뿐입니다.
전산시스템에 오류가 나도,
설비에 문제가 생겨도,
우리는 라인을 멈출 수 없습니다.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책임으로
저는 수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의
피고가 되었습니다.